아내·자녀 두고 자원입대한 6·25전사자, 73년만에 가족품으로
최종수정 : 2024-04-17 10:51기사입력 : 2024-04-17 10:51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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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차말줄 일병의 생전 모습사진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고(故) 차말줄 일병의 생전 모습.[사진=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6·25전쟁 당시 33세의 늦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참전했던 고(故) 차말줄 일병이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04년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를 6·25전쟁 당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한 고 차말줄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1917년 3월 울산 중구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차 일병은 정유회사에 근무하며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중 인천상륙작전 다음 날인 1950년 9월 16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했다.
 
고인은 국군 제5사단 소속으로 ‘영남지구공비토벌’에 참전했고, ‘가평, 청평, 춘천지구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맞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 참전 중 1951년 2월 8일 3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고인은 1970년 야간 훈련 중 부하가 안전핀을 뽑다가 놓친 수류탄을 온몸으로 덮어 소대원을 구한 뒤 산화한 고(故) 차성도 중위(육군3사관학교 1기)의 삼촌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들 차성일씨(75)는 “제 생애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현충원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울분을 달래왔다”며 “험난한 산꼭대기를 수차례 오르내리며 아버지를 찾아준 소식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래로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29명으로 늘었다.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은 전사자의 8촌까지 유전자 시료 채취로 신원 확인에 참여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000만원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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